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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돈 리뉴얼】
거대한 상인들의 모라돈
엘모라드 제국력으로 850년.
아도니스 대륙의 북부 카루스국에서는 국왕과 고위간부들간의 총회의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요즘 엘모라드와의 접전에서 우리 카루스의 병력들이 참패를 거듭하고 있다는 통보가 전달되고 있소.”
총회의 의장이자 서열 1위의 기사단장 룸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카루스 국왕 파이넨드로 2세는 석양이 비치는 스테인글라스 창가의 왕좌에 앉아 무거운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곧 70세가 되는 그에게는 국가에 큰 사고가 없이 집권을 끝내는 것이 작은 바램일 것이다.
“지난 로나크랜드에서 저흰 힘들게 탈환한 중앙지대를 사수하려고 노력했지만 불과 이틀 만에 다시 엘모라드군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승패나 결과가 아니라 놈들이 어떻게그렇게 빨리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지난 로나크랜드 탈환에 참전했었던 4등 왕실기사단장 자이후는 비록 패장으로서 면목은 없었지만 냉정한 태도를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약 3천여 명에 육박하는 정예기사들로 이루어진 카루스의 방어전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전력을 이틀 만에 재수급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놈들에게 신의 은총이라도 내린 것인가…”
룸콜 최고위 기사단장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전쟁에서 병력의 운용과 정비력은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점에서 적국 엘모라드에게 뒤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의 병력 운용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것이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가장 늦게 회의장으로 들어와 숨을 고르던 총 보급장교 라키마는 중대한 문제를 발견한 듯 의장의 말을 이었다.
“엘모라드에 침입해 있는 우리측 스파이를 통해 알아낸 것과 저희 보급부대의 자료를 비교한 결과 최근 엘모라드의 모라돈으로부터의 보급량이 우리 카루스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륙 남동부에 위치한 중립무역도시 모라돈은 최초 전쟁에 뜻을 두지 않고 상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곳곳의 대륙인들이 모여 설립한 최초의 중립지역이었다. 그리고 이후 수세기에 걸쳐 서로 고립되어 있던 카루스와 엘모라드의 무역을 중계하는 한편 더욱 질좋은 물건들을 생산하여 양국에 보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영향력은 현재에 이르러 모라돈의 지원이 없이는 어느 국가도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불평등한 거래는 중립지역으로서 위반사항일 텐데..”
룸콜 최고위 기사단장은 중립지역의 이러한 불평등 거래가 지금껏 한번도 없었던 사건이기에 더욱 의아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근래 적국과의 전투에서의 결과를 분석해본다면 납득이 가는 부분이 확실합니다.”
또 다른 왕실기사단장이자 전쟁지역인 나파이어스 협곡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던 켈레브가 보급장교의 말에 힘을 더했다. 확실히 최근의 패전한 전투에서 엘모라드군의 전략이나 기술이 뛰어났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두 패배했다.
전투에 참가했던 지휘관들이 느끼기에도 가장 의심이 가는 부분은 장비나 물품의 보급일 것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본관이 직접 모라돈의 상인연합을 만나 사실여부를 확인토록 하겠소.”
최고위 기사단장 룸콜과 그의 기사단은 다음날 이동게이트를 통해 모라돈에 입성하였다.
“유감스럽게도 그 말은 사실입니다. 의장 각하.”
비록 크진 않지만 각종 고급스런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자신의 저택 응접실에서 모라돈의 대상인 카이샨이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비서이자 관리인인 빌보르 한 명만을 옆에 두었지만 맞은편에서 온통 번뜩이는 불빛의 무기들로 무장한 기사들에게 조금도 주눅들지 않은 듯했다.
“중립지역으로서 그런 불공정한 보급거래는 조약 위반이란 걸 모르지는 않으실 텐데요…”
룸콜은 당연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카이샨의 대답에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중립지역의 대표에게 섣불리 무례를 범할 수는 없었기에 나름대로의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하..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잠시만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카이샨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응접실을 지나 자신의 연구실로 룸콜을 안내했다. 대상인 카이샨은 상인연합에서 최고의 지위를 갖춘 인물이며 현자에 가까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소문은 그의 연구실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었다. 수천권의 서적들이 책장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으며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구나 도구들도 곳곳에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자국의 연구실이나 서고에서도 볼 수 없었던 희귀품들도 많았다. 과연 대상인의 연구실다운 모습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죠.”대상인이 안내한 곳에는 넓은 창문을 향해 거치된 거대한 망원경이 있었다. 룸콜은 망원경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거대한 것은 본적이 없었다. “저쪽이 바로 모라돈의 서부 최외곽 지역입니다.”
룸콜은 망원경에 눈을 갖다 대고 카이샨이 가리키는 방향을 주시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망원경에서 눈을 뗐다.
“무엇을 보셨는지 아시겠습니까.”
“우리의 주둔군만 있지 엘모라드의 주둔군은 없는 상태이군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우리와 엘모라드의 불공정한 보급은 설명이 안될 텐데요..”
룸콜은 망원경을 통해 모라돈의 서부, 즉 내륙으로 이어지는 경계지역에 엘모라드의 주둔군이 철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모라돈이 건설된 지난 수 세기 동안 카루스와 엘모라드 양국은 중립지역인 모라돈을 보호하는 한편 서로 어느 국가의 세력에도 침범되지 않도록 쌍방의 경계를 충실히 해왔던 것이다.
“보시는 바와 같이 엘모라드의 군부는 최소한의 정비병력을 남기고 모두 철수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희가 지정한 모라돈 외곽지역까지 군부를 배치하지 않도록 새로운 조약에 합의한 상태입니다.”
룸콜 최고위 기사단장은 약 3개월전에 모라돈의 상인연합으로부터 받았던 전갈을 떠올렸다. 내용은 분명 모라돈 외곽지역에 배치된 자국의 군부를 철수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정책결정에 신중함을 기하던 룸콜과 고위기사단회는 엘모라드가 먼저 철수를 행하지 않는 한 군부를 회수하진 않을 것이라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미 50일전에 군부를 철수한 엘모라드군의 동향은 카루스 내부까지 전달되지 못했으며 그 사이 집중된 엘모라드와의 크고 작은 접전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먼저 저희 상인연합의 뜻을 받아들여준엘모라드 제국에 대해 약간의 보답을 한 것뿐이었습니다만…”
룸콜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과 고위간부들의 신중한 결정이 오히려 화를 불러왔다는 사실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이미 카루스와 엘모라드 두 국가의 전력의 균형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대상인의 무언의 협박이 무엇보다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현재로서는 불가항력이라는 결정에 도달했다.
“좋소. 외곽지역에 배치된 우리의 군부에도 곧 철수명령을 내리도록 하겠소. 그렇다면 이후로는 이러한 불공정한 보급거래가 이뤄지지 않도록 약속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저희 상인들은 약속은 꼭 지킵니다.”
대상인 카이샨은 대의를 달성한 듯이 크게 웃어 재꼇다. 그로부터 1개월 후…모라돈은 대상인 카이샨과 상인연합의 지휘 아래 기존의 협소했던 상업지역을 대대적으로 확장할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떤 국가의 보호나 협력도 지원받을 수 없는 모라돈은 자력으로 모든 치안과 외부세력으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했다. 이를 계기로 전쟁에서 패하여 지위가 하락했거나 대륙의 전쟁에 깊은 회의를 가진 각국의 기사들을 돈으로 사들여 더욱 강력한 용병대를 조직하도록 했다.
여기에 대륙 각지에서 흘러들어온 무명의 실력 있는 용병들이 모두 모라돈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복지 수준은 대륙의 어느도시보다 최고로 대우받게 해주었다.
이렇게 거대해지고 잘 정비된 새로운 용병대는 웬만한 고위기사단도 충분히 상대할 수있을 정도의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확장한 지역에 걸맞게 새로운 모라돈 성의 건설에도 착수했다.
새로운 모라돈 성의 건설에는 모라돈뿐만 아니라 대륙의 모든 자원과 인력이 총동원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투자와 노력이 이루어졌다. 외성벽은 더욱 높고 두터워 왠만한 공성무기로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세워졌으며 성안의 모든 건물들 역시 크고 화려하게 다시 제작되고 있었다.
더욱 많은 상단과 주민들이 안전하게 정착하고 보다 자유롭게 생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모라돈 성 이외에도 남동부의해안지대인 ‘희망의 해안’을 개간하여 항구와 거대선박을 신축하게 되었다.
이 역시 앞으로의 무역이나 상업활동에서는 육로를 이용한 것뿐 아니라 대규모의 물품수송이 가능한 해양으로의 이동이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상인연합의 생각에 의해서였다.
더욱 발전되고 거대해지기 시작한 모라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중립지역으로서 아도니스 대륙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겠다는 상인연합의 야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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